용천 역 열차 폭발 사고(한자)용천 역 열차 폭발 사고)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북한 평북 용천군에 있는 철도 평의 선(경의선)용천 역 부근에서 2004년 4월 22일 발생한 다수의 사상자를 낸 폭발 사고이다.개요 2004년 4월 22일 오후 0시 15분경(조선 표준시)평의 선 룡천 역에서 약 100m지점(구내인지는 불명)에서 질산 암모늄을 실은 열차가 대폭발을 일으켰다.평의 선은 중국과의 국경 역인 신의주와 평양을 잇는 주요 노선에서 국제 열차도 운행되고 있다.용천 역은 신의주 역에서 20km미만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이 폭발로 인한 역은 궤멸 상태로 땅은 약 15m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반경 500m이내의 건물이 완파되고 약 4km사방에 걸쳐서 피해를 받았다.역 주변은 건물이 밀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161명이 사망 약 1,350명(일부 보도에서는 3,000명 모두)부상자를 내는 대참사와 됐다.역에서 200m 떨어진 곳에는 용천 초등 학교가 있고 사망자 가운데 76명은 거기서 수업 중인 초등 학생이었다.보고서에 따르면 부상자 가운데 고막이 터져서 청력을 잃은 사람은 80명, 실명한 사람은 5~6명.WHO(세계 보건 기구)에 따르면 안구 부상자는 약 90명이다.또 1,850가구의 주택이 완전히 붕괴되고 6,250가구가 창문이나 지붕 등이 손상됐다.역 주변은 5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밀집하고 있었다.4층의 초등 학교 교사( 연면적 3,250㎡)은 4층이 파괴되고 다른 층도 유리창이 깨지는 등의 피해를 받았다.기타 문화 회관(2,800㎡)등의 공공 시설과 산업, 상업 시설 등 30여채가 파괴되고 총 피해액은 3730억원에 이른다.원인 사고 원인에 대해서”용천군 재해 대책 위원회”위원장의 장·김성근(장)은 “질산 암모늄과 석유를 실은 열차들이 작업원의 조작 실수로 충돌하고 역 구내의 전봇대가 쓰러지고 전선의 합선으로 불꽃이 인화 해서 열차가 폭발했다”고 말했다.현지 취재한 재일지 조선 신보에서는 “화물 열차와 탱크 로리 차량의 교환 작업 중”이었다고 전한다.당국의 사실 확인 속도에다 이 사고는 발생 당일 22일 밤에 처음으로 한국 언론이 보도했다.한국 YTN텔레비전이 촬영한 폭발장 영상에 의하면, 발생 장소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북한 정부는 이 보도 다음 날인 23일에 체류 중인 일본인 기자에게 사상자 수를 공표했다.이 나라의 공식 대중 매체도 중국 신화에 이어조선 중앙 통신이 24일”질산 암모늄)비료를 적재한 화차와 유조차에 대한 작업을 했을 때 부주의로 전기선에 접촉하는 폭발 사고가 발생한 “이라고 보도했다.이 사실 확인과 공식 보도의 속도는 그동안 대규모 사고가 보도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는 이례라고 할 수 있다.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는 유엔 긴급 원조 조정관실에 구원을 24일까지 요청했다.또 평양에 상주하고 있는 유엔 인도지 원조 정국 등 국제 기구 대표들은 사고 다음날인 23일 첫 회의를 열고 2일 만인 24일 현장 파견됐다.구호 활동 사고 다음날 23일부터 인근 지역에서 식량 등 지원 물자가 도착했다고 조선 신보가 전했다.사고 3일 후 25일 조선 중앙 통신은 정부 보건부, 상업성이 의약품, 생활 물자를 주민에 보냈다고 보도했다.사고 후, 부상자는 의료 기관이 비교적 정돈된 신의주시에 많이 옮겨졌다.평양시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도 있는 모양이다.조선 적십자회와 국제 적십자가 협력하고 구호 활동을 했다.또한 현장에서는 4일 만인 26일에 구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던 교사의 잔해 밑에서 한 아동 구출에 성공했다.국가 지원 북한 정부는 우선 23일에 국경이 가까운 중국에 구원 요청, 24일 유엔에 요청했다.각국의 움직임도 빨리 한국 정부는 24일 100만달러 지원하였다.중국 정부도 마찬가지다.한국의 각종 단체도 25일 북한에 파견했다.일본 정부는 유엔의 요청에 응하는 형태로 25일 10만달러의 의약품 제공을 결정.유럽 연합(EU)은 26만달러의 원조를 했다.미국 정부도 인도적 지원을 했다.북한 정부는 국제 사회의 지원 방안을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명했다.북한에 있는 유니세프, WHO국제 적십자 위원회의 의약품이 24일부터 현지 주민에게 제공되고 있다.한국 일본 등 각국의 단체들은 모금을 모으는 등 지원 물자와 의약품을 5월~6월경 신고 등 현지에 들어 활동했다.복구 4월 22일 사고 발생 5일 만인 27일까지 부총리를 총괄 책임자”용천 피해 복구 중앙 지휘부”로 길 인민 위원회(도 행정 기관)”길 지휘부”가 설치되어 구호 활동과 병행하여 노동자 청년과 군인 등을 동원하고 복구 활동이 이루어진.철도선은 초기 단계에서 가선의 부설에 의해서 개통시켰다.한국에서 건설 자재 등의 제공도 받았다.조선 신보에 따르면 주택을 잃은 주민들은 텐트 생활을 강요된 세대도 있던 것 같지만 피해가 작은 집에 사는 세대도 있었다.5월 9일에 착공한 용천 초등 학교 새 교사는 9월 하루까지 완성했다.용천 재해지에서는 9월까지 주택 건설이 끝나고 주택 복구는 사고로부터 약 4개월 반 만에 완료했다.그 풍경 사진을 조선 중앙 통신이 전했으며 새로운 건축이 늘어선 거리 풍경을 엿볼 수 있다.또 모든 것을 잃은 초등 학교에 대한 재일 거류민 단체에서 악기나 컴퓨터 등이 기증됐다.”테러”설 이 사고는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뛰던 조선 노동당 총비서 김정일(김·국방 위원장이 탄 전용 열차가 통과한 한참 후에 발생하자 이를 노린 테러가 아닌가 추측됬다.중국 신화 통신은 김정일(김·김정일)을 노린 것이라고 보도했다.한편 한국 정부는 테러를 부정하고 철도 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단순 사고로 보인다고 말했다.운전 재개 중국을 잇는 국제 열차는 사고 후 6일 4월 28일 운행을 재개했다.이 사고와의 관계는 모르지만 그 해 6월 21일부터 조선 우림 운송 합작 회사와 단둥 중국 국제 여행사가 평양(서광산 호텔 앞)·단둥(중국)간의 정기 국제 여객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복구활동 4월 22일 사고 발생 5일 후인 27일까지 부총리를 총책임자로 하는 ‘용천 피해복구 중앙지휘부’와 도 인민위원회(도 행정기관)에 ‘도 지휘부’가 설치돼 구호활동과 병행해 노동자, 청년, 군인 등을 동원해 복구활동이 이뤄졌다.철도선은 초기 단계에서 가선의 부설에 의해 개통시켰다.한국으로부터 건설자재 등도 제공받았다.조선신보에 따르면 집을 잃은 주민들은 텐트 생활을 강요받은 세대도 있었던 것 같지만 피해가 작은 집에 사는 세대도 있었다.5월 9일 착공한 용천초등학교의 새 교사는 9월 1일까지 완공됐다. 용천 재해지에서는 9월까지 주택 건설이 끝나, 주택 복구는 사고로부터 약 4개월 반 만에 완료했다. 그 풍경 사진을 조선중앙통신이 전하고 있어 새로운 건축물이 늘어선 거리를 엿볼 수 있다.또 모든 것을 잃은 초등학교에 재일 거류민 단체로부터 악기와 컴퓨터 등을 기증받았다.테러설 이 사고는 베이징에서 평양을 향해 달리던 조선노동당 총비서 김정일이 탄 전용열차가 통과한 지 얼마 뒤 발생해 이를 노린 테러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중국 신화통신은 김정일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한편 한국 정부는 테러를 부인하며 철도시설 노후화에 따른 단순 사고로 보인다고 밝혔다.운전 재개 중국을 잇는 국제 열차는, 사고 후 6일인 4월 28일에 운행을 재개했다.이 사고와의 관계는 알 수 없지만 같은 해 6월 21일부터 조선우림운송합작회사와 단둥중국국제여행사가 평양(서광산호텔 앞)·단둥(중국) 간 정기 국제여객버스 운행을 시작했다.